더 강해진 트럼프2.0 관세공격 … 한국기업 지킬 우산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시행한 통상 정책들과 향후 시행을 예고한 정책들의 주요 골자다. 이러한 기조에 맞춰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또한 미국을 방문 중인 한국 기업인들에게 대미 투자를 권유하며 10억달러라는 액수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모두 높은 데다 아시아 국가들 중 중국, 베트남, 일본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규모의 대미 흑자를 달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미 한국이 미국보다 4배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거나, 대표적인 대미 흑자국이라고 압박하면서 심지어 환율조작국이라는 의심마저 완전히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기업은 아래와 같은 다양한 전략을 병행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
① 공급망 재편을 통한 리스크 최소화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는 경우 한국 기업들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글로벌 공급망(GVC) 재편을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첫째, 생산거점 다변화(China+1)를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동남아시아, 인도, 멕시코 같은 대체 생산기지 투자를 늘려 공급망 리스크 분산을 도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생산기지 일부를 중국에서 베트남·인도로 이전했고, 현대자동차도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와 인도에 공장을 세워 중국 시장의 수요 둔화를 보완하고 있다. 둘째, 조달처 다변화와 재고 확보 등으로 핵심 부품 수급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미·중 갈등으로 특정 국가에서 생산부품 공급이 중단될 경우에 대비해 한국 기업들은 미국·유럽·일본을 포함한 우방국 공급망을 강화하거나 국내 생산 확충으로 자급률을 높이는 노력이 요구된다. 실제로 다수 한국 기업이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배터리 핵심 광물의 해외 광산 확보 등으로 공급망 안정화를 추진 중이다. 셋째, 수출 시장 다변화 전략이다. 어느 한쪽 시장의 악화에 대비해 대체 시장 개발 노력을 강화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을 늘려 특정 시장 또는 특정 지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특히 주목할 가치가 높은 시장은 아세안이다. 아세안 경제는 중국과 긴밀히 연결돼 있고 중국과 교역량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한편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도 우리나라와 유사하거나 더 높은 수준이어서 미국이 직접 관세를 부과하는 식으로 공격적인 통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점에서 아세안과 한국은 공동의 이해관계하에서 협력할 여지를 많이 갖고 있다. 다만 2013년 이후 미국에서 아세안으로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입이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 때문에 아세안에 대해서는 보편관세가 부과되지 않거나 부과되더라도 그 영향이 즉각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아 보인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지 생산과 투자를 통한 시장 공략에 집중할 것이 요구된다. 한국 기업들의 경우 2024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한 기업의 60.5%가 "대미 투자를 유지 또는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힐 정도로 선제적 대응 의지가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가령 삼성전자는 17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텍사스에 최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고, SK하이닉스도 미국 내 반도체 패키징 시설 투자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요구에 부응하면서 관세나 규제 리스크를 회피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일자리 창출 효과를 앞세워 현지 정부의 지원과 인센티브도 확보할 수 있어 '투자→인센티브→재투자'의 선순환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더욱 효용이 높다. 현대제철의 미국 자동차 강판 공장 추진이나 CJ제일제당의 미국 식품공장 투자 결정도 미국 시장에서 현지화를 통해 성장 기회를 찾는 동시에 무역장벽을 피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에너지 도입처를 다변화하고 미국발 통상 압력을 완화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관세로 인한 비용 상승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 시장 지위를 갖고 있다면 가격 인상이 실효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회사 자체적으로 관세 인상으로 인한 원가 상승분을 흡수하기 위한 선제적 원가 절감과 경영 효율화도 필요하다. 나아가 단기적으로는 관세 인상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상쇄하기 위해 보편관세 적용 전 시점에 미국에 수출함으로써 미국 내에 대량의 재고를 비축해 관세 인상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직접투자 방식 혹은 현지법인 인수·합병(M&A)을 통해 현지 생산거점을 확보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다국적 제약사 릴리는 올해 2월 27일 미국에 27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향후 5년간 생산시설 4개를 건설하고 3000명 이상의 고숙련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생산시설이 건설될 구체적인 장소는 올 하반기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데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일부 산업 분야에서는 생산시설의 인허가, 건설과 준공 그리고 규제기관의 승인까지 장기간 소요되기도 한다. 이 경우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미국에서 생산을 개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낮은 대책일 수 있다. 설령 신속한 생산시설 이전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직 전후방 협력업체가 함께 이동하지 않는 경우엔 공급망이 길어져 물류·보관 비용만 늘면서 가격경쟁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③ 대중 전략 : 선택과 집중
중국 사업에 있어서는 현지화 심화와 신중한 포지셔닝 전략이 요구된다. 이미 몇몇 소비재 기업은 사드 보복 이후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했고, 신규 투자는 크게 줄었다. 한국 기업들의 대중 직접투자도 극도로 위축됐다. 중국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 핵심 기술 유출 방지 등을 이유로 중국 내 생산을 축소하거나 이전하는 결단이 필요할 수 있다. 또한 제조 공정의 일부만이 중국에서 이뤄지더라도 관세 부과나 수입 규제와 관련해 미국 당국이 원산지를 중국으로 판정함으로써 한국 기업의 대미 수출품에 고율의 관세 또는 상계관세를 부과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하고도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 밖에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기업들은 현지화를 통해 중국 내 수요를 계속 공략하는 이원화 전략을 취할 필요도 있다. 가령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공장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해 중국 고객에게 판매하고, 현대차도 중국 전용 모델 출시 등으로 현지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 사업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와 정부 간 외교 채널을 통해 돌발적 규제에 대응하는 노력도 병행한다.
④ 對러시아 및 對이란 전략
트럼프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파국으로 끝난 백악관 회동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 전략의 일환으로 러시아 제재를 확대할 방침이다. 주요 러시아 은행과 국영 에너지 기업에 대한 차단 조치를 내리거나 중국·인도 등 러시아산 석유를 거래하는 외국 금융기관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제재 완화 가능성도 존재하는데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협상이 진전될 경우 일부 경제 제재 완화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란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4일 '최대 압박' 전략을 공식 재개하며 이란의 테러 지원 자금 차단을 목표로 제재 확대에 나설 예정이다. 특히 이란산 석유 수출을 돕는 제3국 선사, 보험사, 항만 운영사가 주요 타깃이며, 중국 기업을 포함한 비미국인(non-US persons)도 제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승윤 기자 정리]